방송대 중간 과제 시즌이다. 우리는 중간고사 대신 과제를 한다. 3학년 2학기, 나는 서른에 입학할 줄 알았는데 서른에 졸업할 것 같다.

내가 방송대를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무언가를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것을 허락 받은 적이 있었나

나는 사실 방송대를 간 내가 미웠을지도 모른다. 아니 시계를 돌려 마이스터고에 간 내가 원망스러웠을지도 모른다. 내가 과고를 갔었다면, 하다못해 자사고라도 갔었다면, 첫 직장에서 주 100시간씩 일도 하지 않았을 거고, 고객들에게 욕 먹으면서 일하지도 않았을 거고, 서울에서 자취하지도, 빚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내가 마이스터 고등학교를 가서 중소기업이 아니라 대기업 생산직에 갔다면, 그저 그렇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렇지 않았고, 그래서 좋은 친구들과 인문학을 만나게 되었지만 동시에 학문은 멀고 삶은 가까운 법이라 젊음에 관통 당해버렸다. 나는 그 두 개가 충분히 트레이드 될 수 있을 줄 알았다. 관통된 젊음에는 말로 명확히 하기 어렵지만 저평가된 나와 그걸 벗어나고 싶어 발버둥친 스스로와 번아웃이 와서 퇴사하고 이직해버린 내가 있었다.

나는 종종 누군가 나에게 마이스터고 가서 대기업 고졸 채용 갈 껄 하는 말이 무례하게 느껴진다. 학교 친구들과 전부 알고 지내진 않지만 대부분은 다시 대학을 갔고, 그 중 일부는 도박 빚을 졌으며, 누군가는 여전히 매우 어려운 삶을 지내고 있다. 그 말이 기만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은 나랑 보통 같은 직장이나 나보다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만족하지 못하고 있고, 나의 젊음을 질투하기 때문이다.

자 다시 한번 나에게 물어본다. 내가 방송대를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무언가를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걸까? 그걸 허락 받은 적이 있나? 누군가는 방송대 졸업 후에도 고졸이라고 볼 것이고, 누군가는 나를 그저 성실한 젊은이로 기억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역린이 있고, 보통 그 사람이 가장 많이 이야기 하는 것이 역린이다. 그리고 나는 그 역린이 커리어이다. 왜 커리어가 역린일까? 관통 당한 젊음 때문일까? 아니면 LLM이 나를 대체할까봐 두려워서일까? 욕심이 많아서 라고 생각한다.

맞다 나는 욕심이 많고 소유욕이 강한 사람이다. 이 소유욕은 사람이나 물건이 아니라 감각이다. 감각을 소유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 특정한 분위기, 감정, 감각을 가지고 싶어한다. 나는 내가 무시 당하지 않길, 막내이지 않길, 모든 일을 척척할 수 있길 소유하고 싶어한다. 내가 인문학 전공한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이유는 결국 스스로의 생각을 잘 말하고 거절할 수 있음에서 나온 거였다.

젊음의 레버리지를 크게 땡겼다. 정말 생사를 왔다갔다 한 순간도 있었고, 너무 인격적으로 모독이어서 다 엎어버리고 싶은 순간도 있었고, 30시간 연속 근무하고 지쳐서 쓰러지거나 한달 동안 12시간 야간 근무를 하고 24시간 내내 자고 화장실 가고, 자고 화장실 가고를 반복한 날도 있었다.

내가 관통 당한 젊음은 마침내 나에게 다시 돌아와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걸 바라는 사람인지를 고민하게 해준다.

지금은 21세기다. 옆집 사람 직업은 몰라도 400 km 떨어진 사람이 고위험자산으로 100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는 손쉽게 접하는 세상이다. 자 이제 22살쯤 나이 많은 이에게 들었던 “니가 뭘할 수 있지”에 답해본다.

내가 뭘할 수 있냐고?

난 아무것도 할 수 있는게 없지, 그저 일하고 공부하고, 버는 만큼 쓰고, 열심히 살지만 제자리지, 하지만 내가 너보다는 리스크 관리를 잘할거야 장담하지

이건 개별된 사건처럼 보이지만 나, 나현이라는 맥락에서 하나의 이야기다. 고등학교를 가고 취직을 하고, IT 인프라로 전직을 하고, 그거에 맞춰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컴퓨터과학과를 재학하고, 이직을 하고, 자취를 하고, 인문학적 감각이 있고, 수많은 감각들이 관통해갔던 모든 순간들을 ‘나’ 라는 맥락에서 묶으면 당연한 이야기가 된다.

자 다시 한 번 물어본다. 내가 방송대를 자랑스러워 해도 되는 걸까? 내가 그것을 허락 받은 적이 있나?

당연하다. 당연히 자랑스러워도 된다.

이제 그럼 스스로 사족을 달 것이다. 졸업해도 누군가는 고졸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그저 성실한 젊은이로 볼 것이고, 성적도 좋지 않고, 블라블라블라

스스로의 사족들을 쓱 치운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속삭인다.

‘너무 많은 것을 증명할 필요는 없어’

아 살면서 이보다 좋았던 순간이 있던가, 살면서 이보다 안정된 순간이 있던가, 살면서 이보다 아름다웠던 순간이 있던가, 분명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순간 또한 아름답다.